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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간 개선을 통한 우리 찾기 및 생태도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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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1-19 14:45
작성자 조영화
조회수 2,440
전 관련 공부를 하던 학생입니다.
전 제가 연구한 것이 관련 업무에 도움이 될까 올려 봅니다.
전 쓸데가 없고 버리자니 아깝습니다.
전 그나마 이곳이 이걸 버리는데 가장 맞다고 봤습니다.
전 지우셔도 괜찮습니다.



학교 공간 개선을 통한 우리 찾기 및 생태도시 건설


 저희는 미디어 교육이란 말을 알고 있습니다. 학교 건축이란 조성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한번 조성되면 쉽게 변화되지 않는 일종의 경성 저속 미디어(hard and slow media)입니다. 또한 영국의 처칠(W.Churchill)이 일찍이 "처음에는 사람이 환경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환경이 사람을 만들게 한다(We shape our building and they shape us)."라고 말했듯이 생활공간은 사람들의 관습을 좌우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량생산 체계 속에서 규격화는 불가피한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집단의 형식화(fprmality)에 의해 규격화된 생활공간은 자칫하면 인간생활 자체의 기계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기계화된 규격화가 아니라 개인의 존재가 인정되는 표준화(standardization)는 개성화와 공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생활공간이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격(personality)에 적합한 기능을 갖추고 그 공약수로서 규격화된 생산 재료를 이용하여 생활공간의 표준화를 추구한다면 오히려 협동의식을 통해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고, 전체적인 질서 속에서 개성화를 도모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각 지역(local)의 기후와 풍토에 적합한 표준화(standardization)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각 지역에 적합한 표준화만 진행되어도 생활공간의 개성화는 저절로 확보될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 이후로부터 교육의 중요성은 더 커져서 3.1운동 이전까지 우리의 서당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급격하게 줄고 현대식의 학교가 설립되었지만 이는 일제의 주도적인 행위로 일어난 급격한 변화였습니다. 소규모 마을 공동체에서 시작된 교육행태가 전쟁을 대비한 군사시설처럼 바뀌어 꾸며졌던 것이었습니다.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적인 교단과 연병장을 연상케하는 운동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그 순간까지 이 사실은 잊혀졌습니다. 아니면 지금까지도 외면하고 있는 아픈 기억이며 역사인 것입니다.

 이제 '형식적인 학교시설'은 이미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형식'을 내실로 바꾸어나갈 때입니다. '실질'적인 학교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모든 사회 전반에서 '형식'에서 '실질'로 돌아서야 할 때입니다. 그 출발은 역시나 우리의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가정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회의 첫발은 언제나 두근거림, 설렘, 반가움, 무서움까지 '학교'와 함께입니다.

 저희들 어릴 적을 생각해 봅시다. 꼬찔찔이 어린애부터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멍한 상태로 교복을 입고,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수능시험을 준비하게 되는 과정까지 저희들은 사춘기를 보내고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성장합니다. 과연 우리의 학교 시설은 이러한, 정서적인 성장과정까지도 반영하고 있습니까?


 건축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산물이며 건축 양식은 규범체계로서 바로 이 관계를 굳건히 유지시켜 주는 역동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체화합니다. 그러한 관계성이 펼쳐지는, 비교적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획일적인 학교에서 선택가능한 관계 맺기 방식이 자유롭고 풍요로운지 역시 중요합니다.

 중부지방 취락 고고학 연구의 한성백제기 주거지에 대한 검토 결과, 타원형 및 방형계 주거지→돌출된 출입 시설이 없는 육각형 주거지→'볼록할 철'자형 육각형 주거지→'법칙 려'자형 육각형 주거지 순으로 위계 차이가 확인 되었다고 합니다. 위 연구에 따르면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는 방형(사각형)에서 남측의 돌출된 출입시설이 등장하고 북측변이 곡선으로 둥글어졌다가 결국은 남북으로 조금은 긴 형태의 육각형으로 변모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창문도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에너지원은 북측 주거공간에서도 조금 더 북측 가까이 위치하고 남측의 출입구로부터는 점점 멀어지는 형상입니다. 또한 남측으로 출입시설을 두어 북측의 한랭한 공기의 출입을 최대한으로 차단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북측을 등지고 남측으로부터 공기와 사람의 출입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3칸×3칸 건축에서도 중요한 것은 "햇님"과 "공간의 주인"과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사묘건축의 퇴칸감주형, 불전건축의 전열감주형, 궁궐편전의 후열감주형 모두를 둘러보았을 때 가장 공통적으로 많이 눈에 띄는 점은, 남측면은 출입시설이 위치하여 비우거나 부수적인 위계의 행위가 이루어지며, 북측면으로 치우친 2칸의 공간을 주된 공간의 위계가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기둥이 북측으로 치우쳤는가, 남측으로 치우쳤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상의 신위가 되었건, 불상이나 탱화가 되었건, 용상이 되었건 "공간의 주인"된 자리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님들께서 전통적으로 맺어온 "햇님"과의 관계맺기가 눈에 보입니다.

 우리의 건축 형식은 대게 남측 출입 방식을 택합니다. 남측으로부터, 햇님의 자리로부터 들어옵니다. 햇빛과 함께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주인"은 그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건축양식은 태양의 자리를 향한 경쟁을 부추깁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태양을 찌를듯한 형태를 갖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파라오는 태양왕, 태양신 '라'의 아들인 것이고 태양으로 돌아가기 위한 무덤입니다. 우리의 왕릉과 봉분을 살펴보면 손바닥을 덮어 놓은 마냥 땅을 향한 지향성을 나타냅니다. "나 땅으로 돌아갈래!"입니다. 햇님으로부터 항상 한걸음 물러나고 있습니다. 다만 햇님을 향해 나설 때가 있습니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때입니다. 버선발로, 신발도 신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나갑니다. 귀한 손을 맞이할 때 그러합니다. 이는 일국의 왕이라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궁궐의 남문을 통해 입궁하고, 왕은 북쪽의 처소에서 남쪽의 편전으로 납시었습니다. 햇님이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고 햇님이 지면 다시 북쪽의 자리로 돌아가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쉬면서 내일을 준비하였습니다.


 학교가 마을이라면 마당과 골목은 과연 전통마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풍수 이론에서 북동쪽은 귀문(鬼門)이라 하여 귀신이 드나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찬바람이 치는 만주, 연해주, 북해도,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방향입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과연 지금 북서쪽의 찬바람과 함께 누구 드나들고 있습니까?

 햇님은 양(+)입니다. 마당은 비어있음으로 음(-)입니다. 그리고 집은 다시 한 번 있음으로 양을 이루고 집 안을 비워 음으로 만듭니다. 집 내부적으로 보자면 집의 남측부분은 햇빛이 비침으로서 비워두어 문이나 마루를 둡니다. 양이 비어있는 음을 채우게 합니다. 그리고 집의 깊은 공간은 어둡고 빛이 들지 않아 음이지만 가장 큰 양인 "공간의 주인" 자리를 마련하여 음을 가장 큰 "삶" 그 자체의 양 기운으로 조화롭게 자리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음양론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가장 크고도 큰 "양"의 기운들입니다. 이들을 태양 쪽으로 전진배치시켜 양과 양을 대치시키고 있는 형국이 현재의 교실 풍경입니다.

 햇빛이 눈이 부셔 친구와 선생님과 가족이 보이질 않습니다. 햇님을 향해 끝없이 다가서려는 그리스 신화에 날개 읽은 신과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만난 철학자가 그를 향해 태양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달라는 것은 유럽의 태양빛 아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태양이 내리쬐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일광욕하기 바쁩니다. 우리와는 풍토가 틀립니다. 태양빛의 세기와 공기 중의 습도가 틀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햇님을 향한 되도안한 일광욕 자리 선점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복사copy를 하려면 풍토에 맞게 제대로 해야 합니다. 남측 접이식 천막 차양(처마) 설치 연구를 제안합니다.

 강릉의 선교장과 같은 99칸 전통 상류주택의 최남향 평면 및 입면을 살펴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전면창을 내고 있는, 최남향 벽면을 보면 창이 없거나 있어도 조그마합니다. 처마를 포함시켜 살펴보면 태양과의 관계맺기를 확실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주거공간의 최남측 활용과 행랑채 위치 및 창호 style 연구를 제안합니다.


 현재의 우리 교실에 딸린 북측의 복도는 뒷골목입니다. 어둡고 춥고 어두침침한 음습한 뒷골목입니다. 우리의 전통마을에서는 밝은 앞골목이 있습니다. 집은 대게 남향이므로 남쪽의 나트막한 담 너머로 그리운 이들이 달려옵니다. 그리고 대문 혹은 대문도 없는 그곳으로 마당을 통해 들어옵니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입니다. 그 햇살은 담 혹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우리' 안에 퍼집니다. 그 안에서 너와 나는 스스럼없이 "우리"를 이루었습니다. 그 안에는 자기 자리의 내어줌을 통한 공간 확장의 지혜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이 공동체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 과연 작은 '우리'의 정서가 있습니까? 자기 자리의 내어줌이 있습니까? 한 번 되돌아봐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교의 장으로서의 골목, 북측 복도의 남측 전면 재배치로 골목 양성화 문화 조성 및 밝은 복도 활성화 방안에 대해 연구를 제안합니다.

 뒷방 늙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산체제에서 쓸모가 없는 이는 북쪽공간으로 물러났다는 좀 안쓰러운 뜻입니다. 하지만 전통 생활공간에서는 웃어른이 북측에 계시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주거건축에서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은 대게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습니다. 남측의 출입 시설로부터 가장 떨어진 "안쪽" 자리입니다. 양반주거시설의 대문 옆은 노비의 주거공간이나 창고, 작업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현재의 아파트에서 선호하여 확장하는 남측공간과 비교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현재의 획일적이고 사각형의 건물 형식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르꼬르뷔제의 ‘돔이노’ 구조라고 합니다. 원래 시계공, 기계공이었던 르꼬르뷔지에가 지중해를 크루즈 선박여행 중에 배의 기둥과 선실의 배치양식을 보고 기계미를 찬탄하며 건축에 기계형식을 도입하였습니다. 이것이 '돔이노' 구조입니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황인 산업 혁명기에 도시로 인구가 밀집되어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자구책이었습니다. 이는 공장의 대량생산 체제와 맞물려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이때 나온 이야기가 '집은 살기위한 기계'입니다.

 우리는 개화기를 거치며 일본으로 흘러들어온 이 유럽의 건축 '형식' 만을 차용한 것입니다. 이들의 형식이 어떻게, 어떠한 풍토에서 조성되었는지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산업화의 적합한 선진문물이라는 이름하에 무작정, 일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도 산업화를 이루었고 많은 사람이 굶지 않게 되었고 국제적인 지위도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뒤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우리의 아들딸동생들이 같이 가라앉았습니다. 아직도 바다에서 떠돌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며 감히 갖다붙여 보건데, 이와 함께 르꼬르뷔지에가 찬탄한 크루즈, 선박의 기계미학도 건축분야에서는 가라앉을 때가 도래했음을 선언합니다. 이제는 생산과 재생산만을 위한 기계미학은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사라질 때도 되었을 것입니다.

 서구의 물리학, 양자역학의 발달로 우리는 핵분열과 핵융합의 기술을 활용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극히 작은 세계인 분자, 원자를 거쳐 전자의 세계로 들어갔고, 그보다 더 나아가 양성자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할 때 각자의 전자는 전자일 뿐이지 개개의 전자가 그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거나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기계문명의 근간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로 귀결될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우리의 건축양식이 이들 기계문명의 소산이며, 우리의 삶은 기계문명 속의 하나의 전자라고 할 때, 그 전자 하나하나의 개체성은 인정되는 것입니까? 다름이 인정되는 것입니까? 모두 다 같은 속성을 지닌 전자이어야만이 공식이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닙니까?

 삶을 위한 살림살이를 짓는 집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기계가 되어 버린 건축과 건축공간!
 그 가운데에 서 있는 학교!!
 학교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는 과연 백년지대계에 적합합니까?
 새로운 천년을 여는 경주의 학교는 과연 새로운 천년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천년은 우리의 지난 천년을 살펴봄에서 다시 발을 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모'는 한민족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동이족들이 마을을 만들고 도읍지를 정할만한 신성한 땅을 가리키는 말로,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고 농사를 짓기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손대대로 이어질 부와 권력을 위한 명당을 열망하는 탐욕은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풍수에 미신적 요소가 너무 깊숙이 가미되어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거나 묘지의 입지로서 명당만을 탐하는 일종의 지술로 변질되었습니다.

 고기후학적 관점에서 우리 민족의 원류는 마지막 빙하기 때 북쪽의 한랭해지는 기후를 피하여 기존의 주민을 구축하거나 동화시키면서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바람을 막아 주는 산이 둘러쳐 있고 그 내부공간에 하천이 흐르는 이른바 '두모식 지형'은 한민족의 몸에 밴 입지관념으로 자리하였습니다. 우리의 고대민족인 예맥족은 유목 통구스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을 무렵에 몽골고원 또는 북만주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 만들어 내는 강풍으로부터 스스로를 보로하고 건조한 자연환경에 적응해야만 하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고대민족은 주어진 지형에 적응하고 기후 환경에 익숙해지는 지형순화와 기후순화의 과정에서 특유의 지혜를 터득했을 것이며, 그것은 주택입지에서 취락입지로 발전되어 나아갔을 것입니다. 수 천 년에 걸쳐 몸에 밴 이러한 순화력은 한민족의 또 다른 자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에서부터 그릇된 자리싸움에 마음자리를 내어주지 않도록 우리가 힘써 되찾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리를 내어줌으로서 '우리'가 이루어짐을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남측복도를 완충의 공간으로 점진적으로 활용한 Double Skin, 광덕트천장, 북측외단열을 통한 내열성 확보, 우리 전통적인 공간확장방식인 들어걸개문 등의 녹색 친환경 건축기술들이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 학교의 구조체를 재활용한 방학기간 공사 가능 연구도 병행되면 좋겠습니다. 북측의 한기는 아이들의 서로의 온기로 보완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안인 듯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치유적인 학교 환경 조성을 위하여 환기와 환기장치, 학습 효율에 관한 연구가 더불어 이루어지면 좋을 듯합니다. 교실내부 산소농도에 따른 피로감 및 집중력 정도, 외부와 산소 농도차는 최소화하며 에너지는 보존하는 환기장치, 그리고 우리 전통 한지 혹은 창호지의 에너지 차폐성능 및 교실 창호로 활용방안, 또한 미세굴절과 반사를 통한 온도 상승효과 및 환기 통풍 필터개발 연구를 제안합니다.

 인간의 치유는 개인의 몸과 사회의 전 영역 안에서 신성한 자연의 질서를 따를 때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최소의 비용으로 친근한 재료로 마감하는 연구를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연한 목재를 이용한 손에 닿는 부위 마감이라든지 창문 아래의 공간에 책장 혹은 신발 꽂이를 활용하여 간이 벤치를 마련한다던지 하는 기분에 좋은 영향을 주고 학생들을 배려하는 집 같은 학교, 편안한 학교, 치유 기능이 있는 학교, 전자파로부터 자유로운 학교건축 연구를 제안합니다. 기존의 학교시설을 재활용하여 폐기물생산을 최소화하고 시간비용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친환경 학교 redesign 체계', 각계각층의 모든 분야가 참여하는 'total 학교 design 협의체제' 구축연구도 제안합니다. 또한 동네골목-도심가로-학교교실복도로 이어지는 학교-마을 통합형 가로망 구성을 연구를 제안하여 인간 소외 해결에 학교를 가운데로 다시 끌어들여 인간미 넘치고 지역사회와 자연을 아끼는 친환경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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